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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침례교 [浸禮敎]

개신교(??--> 정통 기독교)의 한 교파.

〔설립경위〕

루터교가 1520년 독일에서 루터에 의해 비롯되었고, 장로교는 1536년 스위스에서 칼빈(Calvin, John)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감리교는 1740년 영국에서 웨슬리(Wesley, John)에 의해서 시작된 것처럼 대개의 개신교 교파들은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반면, 침례교는 그 연원이 명확하지 않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다)

다만 일반적인 통설로는 유럽의 재침례파(Anabaptist)와 이들 가운데 네덜란드에서 활동하였던 메노나이트파(Mennonite), 그리고 17세기 영국의 회중교회에서 분파된 청교도주의자들로부터 침례교가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전래 및 발전〕

한국침례교회의 역사는 1889년에 파송된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펜윅(Fenwick,M.C.)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는 다른 교단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서울이나 평양과 같은 대도시가 아닌 함경도 오지(奧地)와 간도 지역을 주요 선교지로 삼았으며, 나아가 시베리아와 몽고에까지 선교의 손을 뻗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의 침례교회는 초창기부터 교세 확장의 득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펜윅은 재정적으로 선교지원을 받지 못하는 독립선교사라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개인전도와 순회선교라는 나름의 선교 방식을 통하여 1906년에는 충청남도 강경에서 대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 46개조의 회칙을 만드는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3·1운동 후 일제가 포교 허가제를 포교 신고제로 바꾸자 펜윅은 대한기독교라는 교명을 동아기독교(東亞基督敎)로 바꾸어 등록하였다. 일제 말기인 1944년에 동아기독교는 성결교, 구세군, 안식교와 함께 일제에 비협조적이고 재림설(再臨說)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교단을 해체당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교단이 재건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는 하였지만, 동아기독교는 원산을 총부(總府)로 하여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남북분단으로 많은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1946년에 감목체제를 회중체제로 바꾸고 임원 명칭도 다른 교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으로 변경하면서 교단 분열이 일어나 10여 개의 교회가 분리해 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 분리파 교단은 대한기독교침례회라는 교명으로 현재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동아기독교는 1949년 충청남도 강경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교명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변경하였으며, 이 총회를 계기로 대한기독교침례회는 미국남침례회와 손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부터 미국남침례회 선교부의 자금이 유입되자, 선교부와 총회의 정책적 갈등, 타교단 교역자의 무분별한 영입으로 인한 부작용, 총회 내의 여러 파벌, 그리고 한국인과 선교사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국 1959년에 가서 기독교한국침례회와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두 개의 교단으로 분열하고 말았다. 이 분열은 1968년에 가서 소장파 목사들의 반선교사 운동과 교단주권 회복운동의 결실로 극복되어, 한국침례회연맹이라는 통합교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침례회연맹은 1976년에 교명을 다시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한국침례회는 근래에 침례교 세계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 밖에도 몇 개의 침례교 교단이 더 존재한다. 먼저 앞서 말한 것처럼 1946년 동아기독교가 감목체제를 회중체제로 바꾸고 임원 명칭도 변경하는 등 조직을 일신하려고 했을 때 일제하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교인들이 분리하여 조직한 대한기독교침례회가 있다.

그리고 1954년에 들어온 미국성서침례회에서 비롯된 한국성서침례회와 1971년에 들어온 미국선교침례회에서 비롯된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한국침례회에 비해 이들 교단의 활동은 미미한 편이다.

〔교단활동〕

기독교한국침례회의 교단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52년 제42회 총회가 충청남도 칠산에서 개최되었을 때 여전도회를 조직하였고, 1953년에는 현재 침례신학대학의 전신인 성경학원을 대전에 개설하면서 1954년에 문교부로부터 신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51년에 피난민들을 위해 부산에 설립하였던 침례병원은 현재 600병동의 대병원으로 발전하였다. 1956년에 부산에서 발족한 침례회출판부는 1965년 서울로 이전하여 한국침례회진흥원(韓國浸禮會振興院)으로 발전하여 교단 및 기독교계에 걸쳐 활발한 문서선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1965년부터 침례교군인전도부를 조직하여 전국복음화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1977년부터 침례회보사를 설립하여 언론홍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1980년부터는 서울에 수도침례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1989년에 침례회선교백주년기념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기독교한국침례회가 발표한 교세 현황을 보면, 1997년 현재 전국에 2,100개의 교회가 있으며, 목회자의 수는 2,700명이고, 전체 교인은 60만 명이다.

〔특 징〕

침례교의 특징을 의식, 교리, 조직, 대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침례교는 다른 교파와는 달리 물 속에 담그는 침례식을 통해 세례(?? 침례)를 주고 있다.

또한 침례교는 모태교인(母胎敎人)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아세례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자기의 믿음을 보여줄 수 없으므로 유아세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나아가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례교는 로마 가톨릭이 7가지의 성사(聖事)를 인정하는 것과 달리,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마찬가지로 침례식과 성찬식만을 성사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성찬식에 대한 입장에서는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상이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즉, 로마 가톨릭이 지지하는 화체설(化體說)과 칼빈과 루터가 지지하는 공재설(共在說)은 비록 그리스도가 어떻게 임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지만 성찬식에서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고 보는 점에서 견해를 같이 한다.

반면 침례교는 상징설(象徵說)을 채택하여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실제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며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교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침례교는 성경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며 성경무오설(聖經無誤說)을 지지하고, 그 외의 특별한 신조나 교파신학을 수립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침례교에는 성경에 대한 교단의 권위있는 해석보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해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침례교는 성경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도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며, 과학과 교육에 의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때에는 그에 따라 신앙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마 이러한 입장은 침례교가 영적 개인주의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영혼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다른 어느 교파보다도 강조하여 모든 신자들이 똑같이 제사장의 지위를 지닌다는 입장(만신자 제사장주의)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적인 측면에서 침례교는 철저한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를 지향한다. 비록 개교회가 모인 지방연합회, 그리고 지방연합회가 모인 총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삼자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협동의 관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침례교의 교단조직은 한마디로 개교회주의에 입각한 협동적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침례교의 이러한 교단조직은 로마 카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의 다른 교파의 교단조직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된다.

이처럼 침례교의 교단조직이 중앙집권적인 형태가 아니라 회중제도라는 민주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비록 개교회 내에 목사와 집사라는 직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직분은 계급의 직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능의 직분으로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침례교는 대사회적인 관계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즉 국가는 특정 교파를 선호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종류의 종교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처벌할 권리가 없으며 특정 종교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침례교는 다른 교파에 비해 종교의 자유 획득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교단 유형론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형이라기보다는 섹트형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침례교는 교회연합운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기독교침례교회사(김용해, 대한기독교침례회총회, 1964)
≪참고문헌≫ 침례교의 특징과 전개(강돈구, 한국 개신교 주요교파 연구-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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