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
어제 밤, 습한 더위와 함께 예전에 없었던 소란이 이웃에 있었다.
평소에는 너무나도 조용한 집 주변이, 단지 두세 사람 정도의 목소리 때문에불쾌지수가 올라가면서 더욱 잠을 설치게 하였던 것이다.
습한 더위야 나도환경파괴의 주범인지라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여길수 있다.
하지만, 정말 한가로운아파트 단지여서 그런지 활짝 열어논 창문을 통해 들리는 이웃의 목소리와 여기에 더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 냄새까지...
참으로 좋은 곳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역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든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인가 보다.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마음속에 감동이 일어나면서 여러가지 말씀을 주시는 듯하였다.
짧은 시간에 여러가지 감동을 동시에 주시는 통에 지금 당장 일어나서글로 남겨야한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나의 몸은 비몽사몽간에간증문 한편이 완성 될 쯤 이미 90%정도 잠이 들고 있었나보다.
아침일찍 출근하여, PC앞에 앉아 다시한번 어제밤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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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아이들과나는기도를 하고 잠을 청하였다.
잠을 못이루게 하는 주변의 여러가지무뢰함을느끼며, 수양회때 주님께서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주님께서는 나의 가족이 예수님안에서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지, 내가 부양해야하는 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그 가족의 범위를 친척과 하늘가족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하셨었다.
당시에는 감동의 말씀에 순종하리라 생각하며 주님 말씀 따르는게 무엇이 어렵겠는가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제밤 다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수양회때 생각하지 못했던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삼위하나님이 하나인것 처럼너희도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삼위하나님 처럼 그 안에서....
무슨 말씀일까?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주님께서 다시 감동을주셨다.
하나님의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고, 성령하나님은 죄악의 종 된 삶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강압하시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시면서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계시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이 나에게 특별한 것은,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용서..
나 같은 죄인을 계속해서 용서하고 계시지 않으면,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과 용서와의 관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첫번째로 하신일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었다면,우리가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회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용서의 팔을 벌리셨으니, 우리는 당연히 회개를 통한 영접으로창조주와 피조물의경계를 허물고,아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잠시였지만 이 감동을 통해, 나는 나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과 나의 사랑 관계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 됨,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정도의 차이가성화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습한 더위와 주변의 소란함과 담배 냄새가 나를 서서히 분노하게 만들려고 하던 그 즈음에 주님께서는 다시금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여라.
'회개와 인정 그리고 기다림'
우리 죄인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말씀하고 계시는 듯했다.
'회개와 인정 그리고 기다림'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이천년이 지나고 있다.
갑자기 그 동안 예수님께 100% 온전히 헌신하고돌아가신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 생각해 보았다.
주님의 말씀 처럼 아마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의를 들어낼 수 도 없고, 타인에 의해 높혀 질 수 도 없는 것이 어쩌면, 속과 겉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스스로를 높히고, 우상 처럼 숭배되는 인물이 몇명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일로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가렸다면, 그들은 주님에게 무엇이라고 답변해야 하는 것인가?
비록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죄인임을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여겨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결코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서 잠시라도 멀어졌을때, 바로 죄의 권세에 눌려 괴로움의 나락으로떨어질 수 밖에 없는 나는, 존재적 죄인임을 회개하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짊어진 매일 매일의 십자가가 아니었던가?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랑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진정 우리의 지체들을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이 부분에서 나는 회개 할 것이 없는가를 묵상하며 나는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면서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여태 나의 기준에서 서로 사랑하였다.
결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삼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 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천년을 하루 같이 여기시는주님의 시각과 하루를 천년 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이란 것인가?
주님께서는 우리가 결코 이룰 수 없는 말씀을 공허하게 남기셨단 말인가?
최근 마친 요한복음 묵상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전하려 했는지 어렴풋이나마알 것 같다.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시지 않았을까?
요한복음 13장
1절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10절 : "이미 목욕한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것은 아니다."
14절 :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6절 :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기 직전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용서, 낮아짐, 섬김을 보여 주셨고, 이를 통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창조 목적이며, 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임을 알려 주시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고 마지막으로 중보 기도를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간증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각의 정도에 맞게 달란트를 주셨는데, 나에게는 마음속의 말을 드러내는달란트를 주신 것 같다.
수양회때 간증하라고 하신것을, 너무 나대는 것이 과연 유익한 일인가?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또 다른 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수명산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싶어하신다.
나에게 확신을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죄인인 나와 우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고, 용서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인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주님께서 예비한 여러가지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 슬픔, 괴로움, 두려움, 분노 등 어떠한 형태로 올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알수 있는 것은, 내기준과세상가족의 눈으로는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듣거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써 서로가 부족한 지체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늘 가족의 눈으로 받아드려야 비로서, 어쩌면 우리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을 지 모른다.
결국,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진실로 나의 죄인 됨을 회개하여, 십자가보다 더욱 낮아지고, 지체를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누구보다 더 겸손히, 자신을 버리고, 오직 용서와 인정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할 때 비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고 있는 공동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마지막날 주님 만났을때 말이다.
전에는 위선적인 나의 모습이 너무 가증스럽다고 생각하여 셀에서도, 교회 모임에서도 마구 내 마음대로 지껄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봤다.
어떤 모습이 진짜 내 위선의 모습인가?
내가 바라는 모습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쉽게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함부로 말하고,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의 가족이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배려의 걱정을 조금도 안하는 세상과 같은 모습의 관계를 원한적이 없었다.
나는 결국 이 알량한 이기심에 또 속아 넘어 갔다.
주님 우리 수명산교회 지체들이 자신을 모두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무리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