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간

2012년 4월 13일. 금. 나는 소품인가? 교회인가?

산호수나초부 2012. 4. 13. 07:52



[묵상할 말씀]

요한복음 19:17~42

[요절]

21 : 유대 사람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사람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쓰십시오."하고 말하였으나,

22 :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하고 대답하였다.

[묵상]

내가 만일 빌라도였었다면, 예수님에게 어떤 처분을 내렸을까?

빌라도는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깨달음이 있었을까?

식민지를 통치하는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서, 예수님의 처형을 직접 지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답이 나온다.

[빌라도는 예수님을십자가의 길로 가게하신 조연의 역활에 충실했었다.]라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이에 따른 역활을 수행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정론'이라는 것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을 핍박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 빌라도나 로마군인들, 예루살렘의 백성들 모두는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고, 드러내기 위한역활에 충실한 조연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마치 욥과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나 이집트이 바로왕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굳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타락할 것을 아셨으면서도 타락을 허락하시고, 그로인해 하나님과 단절 된 삶을 추구하는 죄속에 빠뜨린 이유는 무엇인가?

그 죄인을 왜? 구원해 주셨는가?

단순한 묵상거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불신자를 태초에 이미 구분하여 예정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교회를 이룬 성도들이 마귀가 통치하는 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보면서, 저런 죄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신것에 감사드리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 허망하고 추악한세상의 삶을 경험하면서,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는 일련의 연단 과정을 허락하셨다.

이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우리는 만들어져 간다.

인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말도 안된다.

존귀한 존재인 인간을 어떻게 지옥의 땔감으로 이용한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은 모두가 선한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로마서 9장에 토기쟁이에 의해 만들어진 토기는토기쟁이에게 항의할수 없다는 말씀은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을 안다고 했었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의 행동과 말, 빌라도의 행동과 말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역사의 소품이었다.

나는 소품인가? 교회인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의지하는 우리 성도들이 될수 있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이 세상의 삶을 경험하며, 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키워가는 거룩한 무리가 되도록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