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5일.목, 예수님 체포되던 날.
[묵상할 말씀]
요한복음 15장 18절~16장 6절
[요절]
19 :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묵상]
이 세상의 삶의 이치 중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협업'이나,'상생', 'Win-win'등의 용어를 살펴보면, 이제는 이 세상도 경쟁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으니,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라는 말이 틀렸다고생각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협업, 상생, Win-win 이라고 하는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가 희생하고, 배려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것 같지만, 그 근본은 여전히 처절한 자신의 이익 챙기기의 또 다른 방식일뿐 바뀐것은 없다.
과거에는 서로를 경쟁자로 간주하고, 타협이나 이해 없이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방법인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였으나, 오랜상거래 경험과 도덕적인 교육, 인본주의, 휴머니즘 등이 두각을 나타내는 요즘 시대에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다.
미소짓는 가면으로 추악한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어,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 본다고 생각이 되면, 그 합의는 깨지고, 강한자는 힘으로 약자를 눌러 쟁취하고 마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적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소위'힘의 논리'이며, 그 힘을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무리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며 사는 것이, 이 세상을 통치하는 원수 마귀의 지배 방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자녀로 살기로 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불신자들과는같은 멍에를 쓰지말고 살아야 할까?
어느 장로님의 말씀 처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이니, 세상과 적당히타협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러한 성도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세상의 무엇을 사랑하라는 말씀 이실까?
예수님을 이용하여, 이 세상이 추구하는 돈, 명예, 힘, 건강, 외모 등등 일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 하셨다.
요한복음 15장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끝에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다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라고 하셨다.
비록,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어, 죽음으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지만, 그래도 우리 성도들은 다양한 벙법으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있다.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술자리나 노름자리를 피하고, 세상 기준의 소중한 것들과 멀리하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섬기고 배려하는 모습등이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 모습으로 보여 질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꽃이라는 임원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신앙의 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은 바보같다고 비웃을 것이며, 자신들의 무리에 속해 그들이 사랑하는 이 세상과 타협하며 굽신거리는 삶의 태도를 보이지 않으므로,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이 세상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도 잠시동안의 고마운 마음만을 가질뿐, 잠시의 시간만 지나면 다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존재적 죄인들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도대체 왜???
하나님의 우리들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로써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되었다.
물론 이 세상에도 자신을 희생하여 의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보면 그리스도인인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아프다.
나는 그렇게 못하는 존재인데, 그들은 어떠한 믿음과 신념으로 그렇게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마음 가운데 밀알 처럼 작은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이 의로운 행동으로 드러났다고 믿고 싶다.
나의 마음속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살아계신다.
그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고 싶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듯이, 나도 이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존재로 쓰여지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성도들의부활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다.
우리 성도들은 그 소중한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간다.
마지막날에 예수님을 만나 '믿음'과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보혈로 성도의 죄가 씻어졌고 의롭다 여겨졌다는믿음과 거룩한 성도들을 위해 영원한 하늘나라가 완성되어 있다는 소망으로살 것이며,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가장 큰 계명으로 삼위 하나님과 먼저간 성도들과 나중에 올 성도들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살 것이다.
비록 보이지 않는 '믿음'과 '소망'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소망하는 삶을 통해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간구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이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우리들을 미워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해외 근로자로 수년간 중동에서 일하다 돌아온 선배가 이렇게 말했었다.
"거기에서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수 있다는 (귀국 날짜가 정해져 있다는)믿음과 (한국에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소망으로 살았었다. 귀국하여 가족을 만났을때 믿음과 소망은 이루어졌다."
이렇듯 세상에 속한 믿음가 소망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는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한가지를 더 붙여 살아야 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들과 실컷 사랑을 나누며,진정한 행복을 누리며살아야지.^^"
우리 성도들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으시는순간 "다 이루었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고 사도요한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믿음과 소망을 갖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믿음과 소망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 만나는 그 날 확증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 믿음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 성도들이 알게 해 주세요.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며 살 수있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 의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