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수나초부
2006. 12. 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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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묘 문화
인구의 증가와 함께 장묘문화는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내어놓은 것이 화장문화의 도입이다. 이러한 대안은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1998년 12월 16일에는 '기독교 화장장려 운동본부'가 발족하였는데 곽선희, 옥한흠, 이동원, 최홍준, 박종근, 최일도 목사 등 나름대로 기독교에 영향을 끼치는 인사들이 그 발족위원이었다. 그들은 '화장은 기독교의 부활신앙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며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화장문화 도입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그 이후 '화장유언 남기기 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신학적 검증을 통해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세태에 휩쓸려가는 무책임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그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잘 따져 생각해 보아 신학적 검증을 통해 우리의 방법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식 장묘문화와 화장문화의 폐해]
한국인들의 풍수지리설을 기초로 한 장묘문화는 국토를 무분별하게 잠식해 들어가는 근원적 요인이다. 개인이나 개별 집안의 이기적 욕망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소위 음택(陰宅)을 본다는 것은 매장문화의 극심한 폐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매장문화에 있어서 봉분문화는 묘지의 자리를 엄청나게 많이 차지하게 한다. 나아가 우리 문화에 있어서 죽은 조상에 대한 '효'사상은 매장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조상이 죽으면 가급적 좋은 자리에 많은 돈을 들여 대형 묘지를 쓰기를 원한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화장하여 납골당에 안치한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흉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납골당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결국 '죽은 조상들의 집'이 되고 말 우려가 있다. 화장을 장려하게 되면 이 나라 곳곳에 크고 작은 납골당이 들어서게 되고, 가진 자들의 '호화 납골당'과 일반 시민들의 '서민 납골당'이 생겨 또 다른 종교중심지로서의 폐해를 가져 올 것이다. 이는 조상숭배의 개념이 남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납골당에는 사자(死者)에게 바쳐지는 향 내음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납골당 꽃공해' 마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국토의 잠식이 아니라 심각한 국민의 정서적 잠식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죽은 자의 시신을 화장하게 되는 것에 익숙해 지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허무주의적 사고가 급증할 우려가 있다. 기독교에서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욕심부리며 살 세상이 아님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화장으로 인해 생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허무주의는 그와는 다르다. 20세기 후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급격한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장묘문화]
성경에는 장묘에 관한 기록이 여러군데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집안에는 우리의 선영(先塋)과 비슷한 개념으로서의 매장지가 있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그들의 집안 소유 매장지에 장사되었으며,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도 매장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매장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죽은 상태를 '잔다'고 말씀하셨으며, 바울도 성도의 죽음을 '예수 안에 자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매장을 전제로 한 표현들이다.
성경은 화장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다. 구약성경에는 저주를 받은 사람들에게 매장이 금지된 예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성적인 범죄와 연관된 사람들을 화장하여 죽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보통 인물들이 매장을 당한데 비해 저주를 받은 자들은 화장을 당했으며, 죽은 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행위이며 저주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바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매장문화를 단순한 문화로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기독교에서의 매장은 부활에 대한 신앙적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다. 죽은 시신을 매장함으로써 묻을 때 기억되는 그 성도의 부활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인위적인 화장을 통해 그냥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흙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에 따라 흙으로 창조하신 인생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매장문화가 결코 부활사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맺음말]
만일 필자가, 화장도 결국은 국토의 상당부분을 잠식할 수 밖에 없으니 조장이나 풍장을 장려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필자가 자연과 국토이용에 대한 염려를 하며 부모의 시신을 산이나 들에 내어 버리도록 서명운동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화장이 부활에 관계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장이나 풍장 또한 부활에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
장묘문화에는 철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화장문화의 도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나아가 신학적 검증의 절차 없이 현 상황만을 보고 성도들에게 화장을 적극적으로 권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우리는 이 땅에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신학적 검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적 교훈에 비추어 보아 매장이 타당하다고 하는 것은 죽은 그 몸 자체가 부활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 아니다. 흙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 흙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기억하는 가운데 우리가 얻을만한 값있는 교훈이 있음을 주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에 반함이 없는 새로운 매장문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국토의 잠식을 줄여가는 가운데 새로운 매장문화를 잘 세워 정착해 감으로써 실제적인 우리의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는 집안의 결속을 지켜갈 수 있다. 죽은 사람들의 무덤은 산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이를 더욱 심도있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화장문화가 장려될 경우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이방인들의 허무주의적, 냉소적 사상이 발흥할 위험이 있다면, 건전한 매장문화는 그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성경이 화장문화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크리스챤 한국, 2001. 4. 20) - 출처 크리스챤 한국 기독교 장묘 문화 내용-
김태형 | (창 3:19)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 며칠전 장인을 화장하고 어제 납골당에 모셨어요... 그 곳에서 주님에게 영광돌리기 보다는 고인에 대한 미신적인 행습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시신 기증도 안된다고 하는데 전 죽으면 화장해서 땅에 뿌려 지길 바랍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주인되시는 주님보다 인간중심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마지막으로 화형을 당하거나, 맹수에 물려 죽는 등 다양하게 순교하신 신앙선배들을 위해 기도 합니다. 2006/12/02 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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