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7일 화.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 줄 위대한 유산. '떠나는 삶'
[묵상할 말씀]
창세기 11장 27절~12장9절
[요절]
31 :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나오려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
[묵상]
어제는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하다가 알게 된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나에게는 살이 많이 빠지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게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고 한다.
(이제는 머리 염색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저런 대화 중에 과거에는 주제에 끼지도 못했던 신앙에 대해 잠시지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 사람은 5일 내내 술 마시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만,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회개도 하고, 봉사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 사람을 거명하면서 그를 전도하면 천국은 따놓은 당상일 텐데 라며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곧 자신은 오늘도 새벽기도까지 하고 출근 했다며 어깨에 힘을 준다.
듣고 있던 한 사람은 자신은 아직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지만 아내가 철야, 새벽, 주일예배, 각종 봉사 등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 열심이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 중 공통점은 처갓집이 4대째 목사 집안이고, 아내가 교회에 열심이기 때문에 그 덕분으로 자신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심판에 구원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아주 화기애애하고 흐믓한 순간이었다.
2005년부터 믿음을 갖게 된 나는 다른 교회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모습이 일반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훈훈한 상황에서, "이런!! 형제님들은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잘못 알고 계시는 군요..."라고 말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침묵하고 말았다.
오늘 말씀 묵상 중에 노아의 첫째 아들인 셈의 후손 데라에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본문 12장 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로 인해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향한 긴 여정을 보내게 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 성도의 나그네, 광야, 이방인의 삶을 경험하며,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조상으로 다듬어져 간다.
오늘 묵상 중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에게 마음이 간 이유는, 나 역시 민서와 창민이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제 만난 기복신앙에 빠진 사람들 조차도 친척이나 아내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자녀 된 나는 내 자녀들과 내 미래의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았다면, 갈대아 우르 지방을 떠난 것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가 스스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갈대아(바빌로니아)우르 지방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여전히 바빌로니아의 변방에 속한 하란에 머물러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를 떠나려고 시도 했던 데라의 의도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24장 2절 말씀으로 우리는,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다른 신을 섬기며 살고 있었던 데라의 가족들을 보게 된다.
당시 수세식 변기가 있었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써, 문명과 지식과 경제가 주는 안락함과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노아'로 부터 '셈'과 '나홀'과 '데라'에게로 전해지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한 동화나 신화로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데라는 그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 세상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가슴판에 새기며 자랐을 것이다.
비록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서 이방 신을 섬기며, 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믿음의 DNA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했던 게 분명하다.
그 믿음의 DNA가 이끄는 대로 문명과 우상을 버리고 낮은 곳인 가나안으로 떠나려는 시도는 바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위대한 유산이다.
비록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거룩과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해 완성 되지만, 우리 믿음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말과 행동과 삶으로 물려줘야 한다.
얼마 전부터 인가 나의 마음에는 점점 많은 부담이 생기고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보여주고 있나?
이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추구하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신비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 은사주의, 인본주의, 범신론 등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 가치와 사조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의를 부인한 채 온전한 예수님의 십자가만 좇는 삶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성도들은 그 가나안을 향한 기나긴 광야의 시간동안 배워야 할 게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던 데라는 비록 하란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은 아브라함은 바빌로니아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그가 섬기던 우상을 모두 버리고 겸손과 낮은 자세로 하나님 절대 의존적 인물로 변해간 것처럼, 우리 성도들 역시 원수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돈과 힘과 명예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이방인과 나그네의 삶을 통해 이 세상과는 완전히 구분 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존귀한 신분의 성도들이, 이 땅의 거칠고 험악한 삶을 통과해 나가며 배워야 할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나는 과연 나의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 나그네며 이방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데라의 믿음과 떠남의 결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안락하기만 한 지금의 삶이지만 자꾸만 생기는 마음의 부담이 무엇인지 그 실체가 조금씩 보입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만을 구합니다.
이 세상의 안락함과 가치를 추구했던 우상숭배의 삶에서 떠나게 하실 아버지의 은혜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