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2일 월. 사랑한다는 것.
[묵상할 말씀]
말라기 1장 1절~14절
[요절]
2절 :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나 주가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3절 : 에서는 미워하였다. 에서가 사는 언덕은 벌거숭이로 만들고, 그가 물려받은 땅은 들짐승들에게 넘겨 주었다.
[묵상]
만일 우리에게, 경제적인 빈곤과 질병의 문제가 닥치고, 거기에 더해 자식이 속을 썩이더니 가출을 해 버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신자의 경우는 그 문제 속에서 나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발견하여 감사의 찬양을 올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불신자들은 도대체 이런 문제들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지 '인과 관계'를 밝혀 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원인으로 사람의 잘못, 조상의 업보, 풍수지리 등이 거론 될 것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처방으로 내적치유, 응분의 치성, 묘지 이장, 이사, 부적등의 방법이 동원 될 것이다.
이 처럼 같은 현상에 대해 신자와 불신자가 보는 시각과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신자와 불신자간에 바라보는 곳이 다른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중 어디를 바라보며, 어디를 최종 목적지로 여기고 살고 있냐의 차이 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자유함'에 대한 나의 신앙관점이 어떻게 변했는지 묵상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바로 뒷 절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라고 질문한 것 처럼, 나역시 자유란, 사회적 억압이나 종 노릇하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 쯤으로 알고 있었다.
최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된 자유함은, 불확실한 미래, 건강, 직장, 돈, 가정/교회/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등 이 땅을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문제로 부터의 벗어남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죄'로부터의 벗어남이었다.
물론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생명력인 하늘의 복(바라크)으로 채우지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의 복으로 채우려 했던 죄의 결과 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점을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우물안 개구리의 시각으로 복음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문제와 원인에 집착하다 보니, 심각한 절망감이 도를 지나쳐 죄책감으로 발전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의 관점에서 묵상하다보면, 믿음을 갖게 된 신자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 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뿌리까지도 덮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더이상 하나님의 공의 앞에 정죄 받지 않는다.'라는 참 자유함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라는 주님의 선포에,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냐?'고 질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힘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의 고지 꼭대기에 올라 정복자로 군림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에 대한 사랑을 설명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하셨다.
에서는 비록 장자의 권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세상적 관점의 힘과 물질적 풍요를 누린 인물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생명력인 장자권을 받은 야곱은 평생 자신의 꾀와 방법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려는 야비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 받은 인물이라고 불러 주셨다.
그는 더 많은 세상적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의 씨름까지도 불사한 인물이었다.
얍복강 씨름의 사건을 통해 보좌를 흔드는 치성으로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이긴 야곱이 축복 받은 인물이 되었다고 교회는 말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의를 부러뜨리셔서 평생을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게 진정한 복인 하나님의 생명력, 바라크을 누리는 참 행복이며, 하나님의 자기 백성 사랑하기 방법임을 교회에게 보여주셨다.
이는 야곱이 먹을 것을 구하는 가난한 신분이었지만,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파라오를 축복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평생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험난한 삶을 살았다는 고백을 통해, 복이란 하나님을 평생 의지하며 사는 것임을 증언 하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다하고 일부러 빈곤의 삶을 살자는게 아니다.
우리 교회는 부자건, 가난하건, 건강하건, 약하건, 잘생겼건, 못생겼건, 날씬하건, 뚱뚱하건, 학벌이 좋건, 학벌이 나쁘건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에서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교회인 우리들은 그래서 아무도 자랑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욕심을 내며 살기는 커녕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남을 섬기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회의 삶을 이 세상이 본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지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복, 사랑, 자유함 등 하나님이 예수님의 핏값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올바로 실천하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할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여기 내 형제자매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37절~40절)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나?
하나님과 단절 된 죄의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를 올바로 알고,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을 올바로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주님! 주님!하며 살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못 알아보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