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
예레미아 23 장 9잘~32절
[요절]
22 : 그들이 나의 회의에 들어왔다면, 내 백성에게 나의 말을 들려 주어서, 내 백성을 악한 생활과 악한 행실에서 돌아서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묵상]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대형 교회가 여럿 있다.
그 교회의 특징은 성도의 숫자가 십만단위 이상이며, 헌금 액수가 연 천억원대 이상이며, 다른 사업을 병행하고 있고, 목회자들은 대기업 총수보다 더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으며,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선포한다는 것'이다.
그들 교회에서는 돈, 결혼, 교육, 취업, 사업, 군대, 질병등 다양한 세상적 문제들을 해결 받기 위해 모여든 성도들을 위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의 말씀들이 선포되며, 그 말을 들은수많은 성도들은 만족하여 지속적으로 그들 교회를 찾는 것이다.
강대상의 목사들은 성도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분에 넘치는헌금과 봉사 활동을 소개하며, 때로는 금식, 통성, 강청기도등을 통해 하나님께 치성을 드리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성도들에게는 거짓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열린 예배, 자유주의 신학, 개혁 신학, 기복 신앙, 번영 신학, 해방 신학, 신유 집회, 성령 집회, 은사 집회 등의 다양한 사조와 프로그램을 통해눈에 보이는 것이진정한 복음이며, 이러한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을강요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보는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어리석고 나약한 성도들과 돈 벌이와 명예를 얻으려는 목회자들과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믿는다는 명분 아래 알리기 싫은 불편한 '이면계약'이 성립 된 것이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은 예수님 오시기 훨씬 이전 이스라엘때 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시나 지금이나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 세상의 복과 성공만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만일 18절의 '그러나 그 거짓 예언자들 가운데서 누가 나 주의 회의에 들어와서, 나를 보았느냐? 누가 나의 말을 들었느냐? 누가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들었느냐?' 라는 말씀을 제대로만 묵상하고 가르쳤다면,우리는 이러한 거짓 복음이 교회에 선포되고 성도들이 열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거짓이며, 샤머니즘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알았을 것이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를 통한 교제 없이, 서로에게 유익한 말과 행동만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예레미아 23장의 불신앙이 거짓복음을 선포한 목회자들에게만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통념은잘못 된 것이다.
잘못은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있었다.
성경에는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양들은 목자의 음성에 귀기울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유일하신 목자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가짜 목자들의듣기 좋은 말에 귀기울이려 한 것은 결국,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가 없었던 무리들의 잘못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가 없는 무리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라고 부른다.
교회에는 수 많은 불신자들이 주님! 주님! 외치며 오늘도 자신의 복을 구하는 치성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통한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장자의 총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 본질적인 거짓복음에 열광하는 우상숭배자들이라면, 우리는 '악마의 회'로 전락하고 만다.
거짓복음과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교회에 안에 있는 치성의 예배자들은 모두가 '불신자'요 '악마의 회원'들인 것이다.
최근 나에게 닥친 회사업무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나약한 양들은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끼쳐지게 되면 믿음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세상의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주님과의 교제를 내 신앙의 모든 것이라고 여기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온갖 교만을 떨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약하고 아리석은 존재적 죄인일 뿐이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늘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나의 존재적 죄인 됨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품안에 숨는 '하나님의 회원'이 되는것 뿐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자신의 존재적 죄인 됨을 회개하고, 자신의 교만과 능력을 부인하는 것.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이 고난이라는 '거룩을 위한 광야의 시간'을 통과 하는 무리들이라는 것을 깨닫는것.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해야할 믿음의 길, 신앙의 길인 것이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나의 잘못을 목회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이 다르지 않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일대일 관계를 통해서만 거룩한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저와 우리 교회가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에서끊어지지 않도록 은혜내려 주시기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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