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
사도행전 23장 11절~35절
[요절]
14 :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입에대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묵상]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처럼 마흔명의 유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갔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겠다며, 목숨을 걸고 바울을 죽일것을 맹세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처절한 분노 가운데로 몰아갔을까?
바울을 죽일때까지 입에 아무것도 대지 안겠다는 것은 거의 철천지 원수지간에서나 일어날수 있는 맹세가 아닌가?
사람은 자기의 먹는 문제를 가장 중요시 여기며 사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죄인인데, 그 죄인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자기의 먹는 문제까지 희생해 가며 다짐한 맹세니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을까?
원수 마귀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철천지 원수지간이며, 대적 관계에 있는 사이에 있으니 눈에 띄는 대로... 그야말로 닥치고 죽여야 하는 존재 일 것이다.
이 하나님의 종을 죽이기 위해 원수 마귀는 계시록에서 '사탄의 회'라고 표현한 거짓 종교인들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율법 지키기를 이용하여 바울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율법을 지키느라 전쟁터에서 조차 뛰지도 않고, 스스로 죄지은 팔을 자르고, 눈을 후벼 파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을 위해 주신 본래의 목적을 위해서 인가? 아니면 회칠한 벽 처럼 거룩한 나의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존재적 죄성 때문인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그 율법을 잘 지켜서 거룩한 그리스도인 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신분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라는 것이 아닌것을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를 벗어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이집트에서 끌려 나온 이스라엘이 절대 의로운 민족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과 은혜로죄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했으니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거룩이 필수 이고, 그 거룩을 위해 율법을 주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언급하신대로 율법을 지켜 거룩과 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율법을 통해 우리의 존재적 죄인됨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다.
우리 노력의 한계와 불가능함을 철저히 경험하여 깨닫고, 그 이후는 우리 죄인들의 죄를 없애주시기 위해 순결한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온 피를 뿌리신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이고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 처럼 율법을 지켜 스스로 거룩과 의에 이르러 구원에 도달하겠다고 살고 있는 어리석은 영혼이 바로 '나'임을 깨닫게 된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전히 어리석고 나약하기만 한 이 영혼은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을 올바로 여기지 못하고, 저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열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로 이 죄인의 습성을 고쳐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만을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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