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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간

2012년 6월 20일. 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묵상할 말씀]

예레미아 10장 19절~25절

[요절]

23절 :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묵상]

바벨론에 포위된 예루살렘 백성들은 드디어 탄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자신의 죄인 됨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였던 목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침략자들의 손에 의해 없어질 그들의 장막과 휘장들을 아까워 하는 탄식일 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진노를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을 위해 주님이 사용하시는바벨론침략자들에게 쏟으라는 억지를 부리기까지 한다.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인이란 말인가?

24절 말씀으로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변명과 책임 회피를 하는 장면은, 아담과 이브의 변명을 시작으로 성경 내내 볼 수 있는 인간이 저지르는 추악한 악의 이야기들이 실은 존재적 죄인인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 22장 15절에서 22절의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에 대한 에피소드 또한 '나'와 우리 교회의 변하지 않는 존재적 죄인 됨과 이 세상의 종 노릇하는 아담 후예인 우리들의 속성을잘 보여주고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말씀은, 가이사가 다스리는 세상에서도 법을 잘 지키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면서열심히 살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과 십일조, 새벽기도 꼬박꼬박 지키면서 열심히 살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물과 기름같은 존재인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목적하에 하나로 연합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16절의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는 신명기 10장 17절의 '하나님은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아니하시는 분' 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상황을 모면해 봐라' 라며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로마 황제를 모독하게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상황에 계신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이러한 행동은 누가복음 4장 1절에서 13절의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금식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께서 받으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 능력을 보여봐!!'라며 했던 마귀의 시험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 앞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과 함께 '존엄한 신의 아들 티베리우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지극히 높으신 대제사장'이라는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하나님의 율법을 죽으면서까지 지키려고 노력했던 바리새인 등 이스라엘의 겉만 거룩한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 제 1계명을 어기는게 싫어서 데나리온 동전을 만지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성전 헌금은 꼭이웃한 나라 인 '두로'의 화폐로 바꾸어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동전을 하나 꺼내 보아라 하고 했을때 그들이 꺼낸 동전은 바로 우상숭배하기 싫어서 만지지도 않는 로마의 동전 데나리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풍요와 희락을 누리면서 이 세상의 종 노릇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을 동전 하나로 폭로 시키시면서, 두 가지 신을 섬기면서 거룩의 가면을 쓰며 살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리신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내가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세금을 정직하게 내면서, 이 세상을 누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얼마나 정직한 삶을 살고 있으며,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묻고 계신다.

마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나의 존재적 죄인 됨이 동일한 것임을 돌아보고 회개하라고하시는 것 같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 세상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이왕이면 더 잘 살고 싶어서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서는 하는게 없다.

몇 가지 행위로보이는게 있다면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어떤 삶이 복 받은 삶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삶인지를보여 주고 가셨다.

전능한 신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설명하거나 드러내지 않았고, 심지어 무기력하게 죽으셨으며,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과 사랑의삶을 살다 가셨다.

성경이 반복적으로 말씀하는 죄와 불신앙에 대해잘 알면서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이 죄인을 그럼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으로 살려내셨다는 복음을 누리며 사는게 우리 성도의 몫이다.

성도의 삶은 어떤 고난과 자신의 의를 죽이는 순교의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결론은흰 옷을 입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Happy ending임을 깨닫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배워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변하지 않는 죄까지도 덮어주시는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와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 세상에 세금을 내듯 하나님을 아는 일에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기를간구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좇는 삶을 통해 예수님을 배워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