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
사도행전 15장 1절 ~ 35절
[요절]
9 :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2 : 그러자 온 회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시켜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신, 여러가지 표적과 기이한 일들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묵상]
'토라'...
우리가 모세 5경으로 알고 있는 토라에는 '율법'과 '완성, 마침'이라는 뜻 외에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의 뜻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 율법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은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그 중 으뜸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냐는 것이다.
만약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십계명과 율법이 선포되지 않았다면, 기고만장한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자기들만이 선택된 거룩한 민족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400백년간 종살이 하느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이집트인이 되어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와 세상적인 가치만 추구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순전히은혜로 그들을 선택하셨고, 홍해를 건너 이집트에서끄집어 내시자마자율법을 주셨다.
그 이유는, "너희는 전혀 거룩하지 않다!! 착각하지 말고, 이 율법을 지켜서 나와 같이 거룩해 져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수 있다."라는 분명한 메세지를 전하고 싶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통해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예수님께서우리의 죄를 위해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시고, 흠없는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모두 목격한후에도 여전히 레위기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토라를 읽으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선포를 하셨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제 갈길을 가는 양 처럼 순종하고 따르지 않았다.
유대교에서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들의 이러한 가르침을 본문은 "우리가 다 감당할 수없던 멍에" 라고 표현하고 있다.
철저한 불신자의 생활을 하던 과거를 접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구원 받은 나와 기존 교회에서 오랜 구력을 자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다른 몇 가지 관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율법에 관한 것이다.
토라의 의미 처럼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을 위해 주신 가르침이지만, 야고보서 말씀에서 보듯이 그 율법을 하나라도 못지키면 모두를 못지킨게 되므로, 애시당초 율법을지켜서 거룩에 이르려는 생각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 의존적/세상 의존적 삶을 추구하는죄라는것을 우리가 깨달아 돌이켜야 한다는것이고, 그 율법을 통해 나의 죄인 됨과 하나님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울로 삼았어야 했었다.
그러나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르거나, 거룩한 의에 이르려는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이 완성 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율법을 지킬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럼에도 이 죄인이 거룩해질 수 있는방법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을 통하지 않고 거룩에 이르는 방법이란, 율법이가리키는 끝에 계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교회안의 형제, 자매들과 다툼이 나는게 싫어서, "구원은 순전한 은혜지만, 천국가기 위한 거룩은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얼마전에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죽을때까지 나는 나의 거룩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거룩과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4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통해 알았고, 그 중 4~5년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여기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라 "영원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나의 거룩과 의에 이르는 방법은,오직 예수님의 은혜외에는 없다"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고 신앙고백이다.
주변에서는 내가 너무 과격하고 극단적이라고 한다.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다시한번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초대 교회 사도와 제자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목격한 증인이었지, 스스로 계획하고 의도하여 선교와 구제를 하지 않았었다.
모든 것은아버지가 하시는 것이다.
과연 성령님께서 행하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시키지 않아도 갈길을 가야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일 텐데, 우리는 잠잠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무엇이라도 보답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인간적인 발상에서 선교와 구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으로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이 죄 없다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죄인은 여전히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거룩에 이르려는 자기 의존적 의를 드러내며 매일 매일을 넘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은혜와 주님의 보혈로 깨끗히 되었다고 하지만 전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모든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은혜만 구하는 삶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드러나는 저의 죄성을 보면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작아지고, 대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커지니 이 또한 신비이며 은혜임을 알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제가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섰을때에 '수고했다 나의 종아'라는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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