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
창세기 19장 1절~29절
[요절]
14 :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롯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서두르게, 이 성을 빠져 나가야 하네. 주께서 이 성을 곧 멸하실 걸세." 그러나 그의 사윗감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17 : 그 두 사람이 롯의 가족을 성 바깥으로 이끌어내자마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롯의 가족에게 말하였다. "어서 피하여 목숨을 건지시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저 산으로 도피하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오."
[묵상]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목사 집안'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을 타고난 모태신앙'
'가족이 모두 독실한 신자'
최근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표현들이다.
조상이나 가족 중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예수님을 몰라도 신자로 대우해주는 관습이 있는 것 같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이 개인의 구원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려 한다고 했을 때, 김현철목사님께서 가능하면 불신자 말고 신자랑 결혼하라고 아내에게 권면했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당시에 매우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목사님은 아내를 친 딸처럼 여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불 심판을 당하게 된 급박한 상황에서 롯의 사위들은 '떠나라!'는 롯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
지금 이 세상에 수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소식을 [농담]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상은 가족이나 조상의 신앙심으로 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는 이상한 잣대를 사용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순전한 개인의 신앙에 주목한다.
장차 민서가 결혼한다고 할 때, 나는 교제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에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 사람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가를 추측할 때, 그의 가족이나 조상의 신앙심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당사자 개인적인 삶의 모습에서 그를 천천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한 명 있다고, 그 주변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고 싶으신 것 같다.
아무리 이 세상을 변화 시키고자 선한 행동과 헌신적인 봉사를 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착하기는 하더구먼' 정도의 평가는 얻을지언정, 주변의 사람들에게 갑자기 믿음의 신앙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선행으로 인해 불신자들이 신자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다.
나의 불신자 시절과 지금의 태도를 묵상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악의 똥 구덩이 같은 이 세상에서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지 않다.
떠나라는 말씀이 이 세상을 떠나서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죽음으로 이 세상을 등지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거룩을 위해 주신 이 세상의 삶을 감사와 기도로 열심히 살 되, 나의 가치와 목적을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이 세상에서의 좋은 평판에 두지 말자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소돔에서 재판관의 일을 할 정도로 높은 지위에 있었던 롯이지만, 소돔 사람들은 롯을 찾아온 손님을 끌어내어 상관하려는 목적이 생기자, '나그네 살이 하는 놈이 재판관 행세를 한다'며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이는 마치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졌던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불신자건 신자건 이 세상이 천국처럼 바뀔 것이라는 헛된 꿈을 가지고 있는데, 실은 나의 소중한 것들을 잃고 싶지 않는 변하지 않는 욕심과 염려 때문이다.
천사는 소돔에 남겨진 것들을 아까워하는 롯의 부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피하는 대신 근처에 있는 소알성으로 도망가라고 허락한다.
롯의 가족은 소알성에 도착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당하는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들이 걱정한 것은 두 도시 사람들의 운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남기고 온 도시의 재산과 들판에 심어 놓은 채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흔히 롯의 아내가 산으로 도망치던 중 소금기둥을 변했다고 알고 있지만, 본문에는 소알성에 도착한 후에 소금기둥으로 변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롯의 가족 중 의롭다 인정 받은 사람은 롯이 유일하다.
그의 사위들은 생명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 일찌감치 소돔과 함께 심판을 받았고, 롯의 아내 역시 자기의 것을 버리지 못한 욕심으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으며, 두 딸은 아버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그로 인해 모압과 암몬 자손들이 생기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로운 사람 롯은 그의 가족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불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도 처음에는 자기의 의와 욕심과 염려 속에 살던 나와 다를 게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광야의 삶을 통해, 나그네와 이방인의 삶을 경험하며, 거룩한 하나님 자녀되기 프로젝트를 묵묵히 살아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고귀한 신분임에도 변하지 않는 죄성으로 인해 괴로움 속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구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봉사와 헌신의 바쁜 삶으로 나를 내 몰아서, 나의 믿음은 완성 되었다고 여기며 살 것인가?
분에 넘치는 헌금과 헌신이 내 믿음의 크기라고 여기며 살 것인가?
죽음을 불사한 선교의 헌신으로 나를 평가해 달라고 우기며 살 것인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나의 존재적 죄인 됨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이 죄인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는 면목없는... 그러나 예수님만을 절대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진정한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를 원하고 계신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성도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선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증인의 삶이지, 우리의 공허함과 부족한 믿음을 채우기 위한 행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진정 변하지 않는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 시키신 복음을 우리 성도들이 온전히 깨닫고, 여기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나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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