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용한 시간

2012년 9월 3일 월.루우벤과 나와 자칭 메시아 ㅁㅅㅁ의 차이점.

 

[묵상할 말씀]

창세기 41장 1절~38절

 

[요절]

37 :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가 베냐민을 다시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못한다면, 저의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 막내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오겠습니다.

 

[묵상]

가나안에 가뭄이 들어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이집트로 가서 식량을 사올 것을 지시한다.

이집트에 도착하여 요셉을 마주한 그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요셉은 그 형들을 단번에 알아 본다.

용서를 구해야 할 입장에 처한 사람이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을 기억 속에서 지우려 애쓰는 것과 반대로 용서를 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용서해야 할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듣기 거북한 소식들이 들려 온다.

대부분 성적인 범죄로 인함이다.

한 동안은 경제 사범으로 인해 가정을 파탄시키는 범죄가 이슈가 되더니, 이제는 유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벌이는 성 범죄가 이슈다.

같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하기도, 용서하기도 힘든 사건의 소식을 접할 때 마다, 과연 예수님의 사랑은 어디까지 용납하시는 크기의 사랑일까? 자문해 본다.

인간적인 나의 생각으로는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의 범위가 분명히 한정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그 범위에 끝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언뜻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그 분의 놀라운 사랑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때가 더욱 많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루우벤은 장남이면서 결국 야곱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그는 35장에서 아버지의 첩과 통간한 적이 있다.

시므온이 이집트 총리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에 야곱의 억장은 무너져 내렸다.

더욱이 시므온을 데려오려면 막내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에 야곱은 괴롭기만 하다.

사랑하는 요셉을 평생 마음속에 묻고 살아왔는데, 시므온과 베냐민까지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어떤 아버지가 묵묵히 자기 감정을 숨기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려 장남 루우벤이 나섰지만, 기껏 일이 잘못되면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는 다짐을 듣고 실망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꿈 이야기를 하는 동생을 질투에 눈이 먼 형들이 죽이자고 했었을 때, 장남으로서 죄를 짓지 말자고 동생들을 다스리지 못했던 루우벤.

자신은 끝까지 요셉을 죽이지는 말자고 주장했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루우벤.

인질로 잡힌 동생과 그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동생의 목숨이 위태롭지만 자신이 책임질 일이 생기면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고 아들을 죽여도 좋다고 큰 소리 치는 루우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변명이나 일삼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여자를 탐했던 그의 모습에서 욕심에 눈이 먼 나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을 믿어서 나는 이렇게 변했다고 자랑 했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어두움을 나는 오늘 또다시 들키고 말았다.

빛 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나의 더러움과 추악함과 어리석음이 조금씩 드러남을 경험한다.

그리고 존재적 죄인인 나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의 거룩과 의로움만을 봐 달라고 중보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경험한다.

 

오늘 새벽에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했던 한 사람이 죽었다.

어떤 매체는 그를 가리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였고, 어떤 매체에서는 그를 자유 언론을 위해 한 평생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다른 매체는 교육과 경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국내외의 유명하다는 신문, 인터넷, TV, 라디오 어디에서도 그를 가리켜 300만 명의 불쌍한 양들을 현혹시킨 거짓 삯꾼, 유황불 못에 떨어질 거짓 목사, 거짓 선지자라고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돈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이 세상은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세상의 고지에 우뚝 선 요셉 앞에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요셉은 그 자리가 자기의 노력으로 인해 꿈이 성취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7년 풍년, 7년 가뭄이라는 상황을 경험하며, 당시 세상의 초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좌지우지 하는 총리가 히브리인 이며, 그를 그 자리에 올려 사용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보게 하셨다.

예수님 또한 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신성을 십자가의 무기력한 죽음으로 나타내셨다.

이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실증하셨던 것이다.

 

루우벤과 나는 오늘도 죄에 걸려 넘어지는 나약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메시아라 말하며 하는 일 마다 성공하는 ㅁㅅㅁ이라는 인간은 결국 스스로의 의로 인해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요셉은, 아무리 총리일지라도 히브리인과는 함께 식사조차 하지 않는 이집트 땅에서 그의 백성을 구하겠다는 하나님의 꿈 하나만을 믿는 신념으로 20년의 이방인과 나그네 삶을 살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한 계획과 성취에 순종하여 살해 당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옛 사람의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저는 루우벤과 다를바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는 구원 받은 성도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았으되, 예수님의 공로로 거룩과 의롭게 변했다고 봐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리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