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
마가복음 10장 13절~31절
[요절]
15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7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무슨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묵상]
내가 철(?)들 무렵에 이런적이 있었다.
친구가 한번 밖에 입지 않은 옷이라고 하면서 버리기가 아까우니 나더러 입으라는 거다.
고맙다고 받아들었지만 "흥!! 나를 뭘로 보고 이러는 거야?"하며 그 옷을 버렸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남의 도움을 거절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장면은 우리의 자존심이라는게 얼마나 크게 삶을 좌지우지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 한번은 업무상 아파트에 2년간 무상 인터넷을 지원하고 2년후 어떠한 상품에 가입해도 된다는 인터넷 업체를 끝까지 믿지 못하는 입주민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분명히 무슨 꼼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다.
대부분 이런 일들을 경험했었을 것이다.
복음이 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복음으로 인해 돈, 명예, 건강, 외모, 진학, 취업 등 세상 복이 우리에게 떨어진다는 뜻일까?
복음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때,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침례요한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아무도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우리를 죄악이 다스리는 이세상에서 건져내실 구세주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복음이 복 된 이유는, 죄가 무엇인지 이 세상과 구별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아무런 댓가 없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구원 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더군다나 우리의 노력과 열심을 동반한 행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하니, 자칫 나의 행위가 부족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도 없는 그야 말로 땀 한방울 안 흘리고 얻는 구원이니 이 얼마나 복 된 것인가?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철(?)든 우리들은 이러한 값없는 은혜를 거부한다.
"나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누군데? 나야 나!!! 나도 할 수 있다고!!"
이것이 우리 존재적 죄인의 속성이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수 있는지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먼저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은 구원의 의미 조차 모른다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얻을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어린아이처럼 자기의 삶을 오직 부모에게만 의지하듯 주님에게만 의지하라는 의미가 큰 말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갓난 아이일지라도 자기 만족을 위해 본능적으로 악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또한 어린이가 철(?)이 들면 비교, 자존심, 열등감 등 자기 의를 드러내는 존재로 바뀌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작정으로 인한 은혜 하나면 충분하다는 의미도 생각해 봐야 한다.
부자 젊은이의 이야기에서도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부자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행위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러나 그 젊은이에게 "네가 믿고 의지했던 이 세상의 힘과 가치를 모두 버리고 나를 따라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젊은이는 근심한채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만다.
어찌보면 이 세상의 힘과 가치를 내려놓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하는 우리의 행위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경험하고 본 것 같은 믿음을 갖는 것.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에게서 난 믿음이 결합해야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아니다.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느정도 우리의 선한 행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부자 젊은이가 단 한번도 어기지 않고 지킨 율법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속여서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의 다섯가지 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우상숭배에 관한 율법을 그 청년이 지켰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젊은이를 율법은커녕 온갖 죄를 지으면서 제 멋대로 살고 있는 일반 죄인들과 다름 없는 존재로 여기신 것이다.
결국 죄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건, 하나님과 율법과 죄에 대해서 잘 알고 거기에 더해 행위까지 거룩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건 우리 모두는 똑 같은 죄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변하지 않는 우리의 존재적 죄성을 사랑으로 덮어주셔서 예수님과 연합 된 교회, 즉 예수님 안에 품고 있는 우리 신자들은 우리의 처지와 상황과 행위와 상관 없이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복음이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죄성을 가지고 있는 나는 구원하셨다고 하고, 나보다 훨씬 선한 행동을 많이하고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주님에게 "당신은 왜 모두를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불공평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복음은 이 세상에 이미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은 선한 성품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 인류는 모두 복음을 전해 들었다.
이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받아들이는데 무엇이 더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까?
참으로 어려운 내용이다.
나의 경우는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했었다.
자유의지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죄의 순간을 선택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구원, 전적인 은혜, 자유의지, 선택, 믿음....
어렵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라는 말씀을 믿는 수 밖에 없다.
내 주위의 불신자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구할 뿐이다.
그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을 불공평하다도 불평하지 말고, 이 죄인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주신것에 감사드리는 것.
바로 신자의 삶이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비록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른 모습과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주님께서 묶어 주신 우리 수명산 교회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나의 의와 가능성과 능력을 모두 부인하고 매일 매일 나를 죽이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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