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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간

2012년 9월 27일 예수님을 몰라보는 이유?

 

[묵상할 말씀]

마가복음 6장 1절~6절

 

[요절]

2 :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묵상]

만일, 어느 사람이 한 마을에서 어린시절부터 평범한 아이처럼 자라다가, 몇 년동안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상한 사상을 갖고 남들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국민학교 시절 반공 수업에서는 그 같은 사람을 '간첩'이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이렇게 의심부터 하게 된다.

태초에 성부하나님과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자 빛이신 예수님께서 나사렛 고향에 이르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대해 말씀하시자, 어린시절부터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배척을 하게 된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을 비롯한 선지자들은 그들이 태어난 고향에서는 늘 배척을 당한다.' 라는 내용인데, 고향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가족과 친척들까지 그들을 배척할 것이라고 말씀하실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표현으로 이 세상에 보내졌던 수 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이 세상은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구세주 메시아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인정은커녕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라!!'로부터 시작되니 죄가운데 있는 우리의 마음은 그들의 선포가 달갑게 들리지 않았고 결국은 그들을 죽여버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에 속한 사람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더군다나 본문 4절에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라는 말씀은 눈과 귀가 닫힌 세상의 사람들 범위를 가족까지 정의하고 있다.

가족을 포함한 이 세상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복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보이신 이적과 자신의 복을 기원하는 대상으로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나마 처음에는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환영하였으나, 결국은 모두 배척하고 심지어는 살해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듯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배척하여 살해한 자들이 그들의 고향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친척과 집안에서도 있었다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3절의 '(믿음의 무리=교회, 신자)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믿음의 신자는 그들의 고향, 친척, 집안에 있는 사람조차 알수 없는 신비한 은혜로 인해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늘 중보해야하는 존재들이다.

가끔 어떤이의 구원 영접 소식과 누구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내가 혹은 우리반이 기도를 많이 했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중보기도를 내가 했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랑일 뿐 복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렇듯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우리들의 숨기고 싶은 본성인 나보다 높은 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존재적 죄인된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고향사람들은 물론 친척과 가족들 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 큰 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소망을 두어야 할 곳은 원수마귀가 통치하는 이 세상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교회의 노력과 열심으로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죄인들에게 복음의 믿음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뿐이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 즉 공의와 사랑과 온유와 평화이신 그 빛을 반사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 기준의 열심과 노력을 경주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해야 한다.

신비한 기적이나 체험으로는 결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결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마치 생생하게 본 사람들처럼 오직 믿음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 표현하며 보여주고 증명한다는 말인가?

교회가 이 세상을 변하게 만들기 원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깨달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의와 열심을 총 동원하여, 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데 최선과 노력을 다 하라는 게 아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삶(나의 이익과 이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죄를 뿌리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력인 '복'(바라크)에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천국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을 살아내야 한다.

이러한 거룩한 삶이야말로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길인 것이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욱 알게 하십니다.

우리 신자들이 걸어 가야하는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삶 모두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인 복음을 알게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 수명사 교회가 세상적인 열심과 능력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알게 되는 지혜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게 되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