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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간

2012년 11월 16일.금.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

 

[묵상할 말씀]

히브리서 11장 33절~12장2절

 

[요절]

36 :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면서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묵상]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 보다, 생명보다 더 믿는 것을 세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세상은 그들 마음속에 감추어 놓은 흉직한 죄의 모습이 드러나는게 두려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처참하게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예배의 주인이 자신이라며, 나그네와 순교의 삶과 정반대의 삶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하나님에게 자신의 성공과 문제해결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교회안에서 세상의 것을 구하려는 무리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하루속히 이 시간을 지나, 복음의 참 뜻을 알게 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우리 교회의 삶은 예배의 삶의 연속이며, 그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 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는 믿음은 나의 노력이나 지식이나 열심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상은 공짜와 선물과 은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우리 교회도 그래서 복음을 은혜로 받아드리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의 정성을 더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하늘나라의 원리에 적용하다 보니 나타나는 크나큰 오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나, 나의 노력을 통한 이 세상에서의 성공, 나의 열심을 통해 평안을 얻겠다는 것 등 나를 통하고 나를 위하고 나를 자랑하기 위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이란,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과 사람들을 용서하고 참아내는 삶이라고 생각할수 있겠으나, 본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셨던, 창조주가 피조물을 용서하기 위해 죽은 삶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삶입니다.

꼭 나를 대적하는 대상이 없더라도, 나 스스로가 이 세상에 대해 죽는, 사랑과 헌신과 섬김과 온유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옛 사람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우리 교회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연합되어 있는 우리 교회는 우리의 미 완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거룩으로 인해 의로운 존재라 불리우는 존귀한 신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마음속에 예수라는 믿음의 씨앗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서 예수의 씨앗이 생명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십지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